약 40만 년 전 동아시아에 살았던 인류의 먼 사촌 호모 에렉투스가 지금은 사라진 인류 집단 데니소바인과 실제로 유전자를 주고받았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흔적이 이빨 화석에서 나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AP 통신에 따르면 중국 여러 지역에서 발굴된 4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 이빨 여섯 개의 법랑질(치아 겉면을 감싸는 단단한 조직) 단백질을 분석한 연구 결과가 지난 5월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실렸습니다. 이 연구는 중국과학원 산하 고척추동물·고인류연구소(IVPP)의 푸차오메이(Qiaomei Fu) 교수 연구팀이 진행했습니다.
여섯 개의 이빨, 두 가지 단서
호모 에렉투스는 약 2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나타나 아시아와 유럽 일부까지 퍼져 나간 인류의 조상 격 집단입니다. 인도네시아·스페인·중국·조지아 등에서 화석이 발견됐지만 유전자나 단백질은 시간이 지나면 잘 부서지고 사라져 이들의 몸속 정보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연구팀은 중국 여러 지역에서 나온 남성 다섯 명과 여성 한 명의 이빨에 남은 법랑질 단백질을 뽑아냈습니다. 여섯 개 이빨 모두에서 법랑질을 이루는 한 단백질에 두 가지 돌연변이가 함께 발견됐습니다. 하나는 지금까지 보고된 적 없는 변이로, 동아시아에 살았던 호모 에렉투스만의 표식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데니소바인, 그리고 우리에게로 이어진 흔적
나머지 하나가 더 흥미롭습니다. 이 변이는 데니소바인과 현생인류 중 극히 일부에서도 함께 확인됐습니다. 연구팀은 이를 근거로 호모 에렉투스가 과거 데니소바인과 짝을 짓고 유전자를 물려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이 유전자가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어진 경로는 훗날 우리 조상이 데니소바인과 다시 섞이면서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의 고인류학자 라이언 매크레이(Ryan McRae)는 AP 통신에 "새로운 방법으로 지금의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아주 흥미로운 방식으로 되짚어 준 연구"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그는 호모 에렉투스가 데니소바인과 교잡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데니소바인의 조상일 가능성도 있다며 정확한 관계는 아직 불확실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화석이 부족해 못 다 채운 퍼즐
연구를 이끈 푸차오메이 교수는 호모 에렉투스가 다른 인류 집단들과 정확히 어떻게 이어지는지 밝히려면 더 많은 DNA와 화석 조각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뼈나 이빨에 남은 유전 정보가 워낙 적은 탓에 지금 나온 결론도 앞으로 새로운 화석이 나오면 바뀔 수 있는 잠정적인 그림입니다.
한반도에서도 이 시기와 겹치는 흔적이 있습니다. 전곡선사박물관에 따르면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점은 중국 동북부의 화석과 유적을 근거로 대체로 100만 년 전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보며 이 시기의 고인류는 이번 연구와 같은 호모 에렉투스 단계로 분류됩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으로 꼽히는 평양 상원군 검은모루동굴은 연대가 40만~50만 년 전으로 추정돼 이번에 분석된 중국 이빨과 거의 같은 시기입니다.
다만 정작 그 시기 사람의 뼈나 이빨은 한반도에서 아직 나온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한반도의 가장 오래된 사람 뼈 화석은 모두 북한 지역 동굴에서 나왔지만 이마저도 호모 에렉투스보다 훨씬 뒤인 호모 사피엔스 단계의 것입니다. 이번 연구처럼 이빨 속 단백질을 분석해 교잡 흔적을 찾아낼 만한 재료 자체가 한반도에는 아직 없는 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