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수돗물에 넣는 불소의 원료가 중동 전쟁 여파로 반년 넘게 부족한 상태입니다. 올봄 일부 지역이 농도를 낮추거나 첨가를 멈췄고, 9월에도 새로운 도시에서 같은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AP 통신에 따르면 미국의 여러 상수도 사업자가 지난 4월부터 불소 원료인 불화규산의 공급 차질을 겪고 있습니다. 미국수도협회(AMWA)의 댄 하트넷 최고정책책임자는 "전쟁이 이어질수록 공급망 부담이 늘어 더 많은 지역에서 부족 사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고 AP 통신이 전했습니다.

전쟁이 화학물질 공급을 흔들다

불화규산은 충치를 예방하려고 수돗물에 극소량 넣는 화합물입니다. 미국 환경보호청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세계적인 수출국이고 미국은 주요 수입국입니다. 이스라엘 생산 업체 한 곳은 직원 다수가 예비군으로 소집돼 생산이 줄었고 그 여파가 곧장 미국 수돗물로 이어졌습니다. 190만 명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는 메릴랜드주 WSSC 워터는 4월 7일 불소 농도를 권장치인 리터당 0.7밀리그램에서 0.4밀리그램으로 낮췄습니다. 펜실베이니아주 리츠 자치구는 몇 주 동안 아예 첨가를 멈췄다고 밝혔습니다.

수처리 시설 안에서 작업자가 불소 주입 장치의 계기판을 점검하는 모습
불화규산은 정수 처리 과정에서 극소량만 주입되는 화합물이다. 사진. AI 이미지

반년 넘게 이어지는 부족

부족 사태는 봄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는 8월 말 재고가 바닥나 첨가를 멈췄다가 새 물량을 받은 뒤에야 낮은 농도로 재개했습니다. 아칸소주 리틀록에 물을 공급하는 센트럴아칸소워터에서도 9월 들어 같은 문제가 보고됐습니다.

이미 흔들리던 정책 위에 얹혔다

이번 사태는 미국에서 수돗물 불소화 논쟁이 이미 커지던 시점에 벌어졌습니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은 불소의 안전성에 거듭 의문을 제기하며 치과에서 쓰는 불소 사용을 제한해 왔습니다. 지난해 유타주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수돗물 불소화를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고 플로리다주도 뒤를 이었습니다. 미국치과의사협회 소속 수불사업 전문가 스콧 토마 박사는 리터당 0.5밀리그램 밑으로 떨어지면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몇 달의 일시적 저하는 대부분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캘거리·주노·이스라엘처럼 불소화를 아예 중단한 지역의 연구를 보면 그 영향은 수 년에 걸쳐 나타났고 이가 자라는 시기의 어린이가 먼저 영향을 받았습니다.

항구에서 탱크로리와 화물선이 호스로 연결돼 액체 화학물질을 옮겨 싣는 모습
불화규산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원료라 국제 정세에 따라 물량이 흔들린다. 사진. AI 이미지

한국은 애초에 수돗물 불소화를 하는 지역이 많지 않습니다. 보건복지부는 구강보건법과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관련 사업을 운영하며 목표 농도를 리터당 0.8밀리그램으로 두고 있습니다. 다만 1980년대 충북 청주 등에서 시작된 이 사업은 지자체마다 찬반이 갈리면서 참여 지역이 초기보다 크게 줄었고 지금은 극히 일부 정수장에서만 이뤄지고 있습니다. 원료 수급이 흔들리면 곧바로 예방 효과가 흔들리는 미국과 달리, 애초에 수돗물로 불소를 채우는 비중이 낮은 한국에서는 이번과 같은 파장이 크지 않은 구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