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주염과 신경치료 후 재감염을 일으키는 세균은 항생제로도 잘 죽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균에만 감염되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이하 파지)를 이 세균들에 맞춰 활용하려는 연구가 최근 잇따라 나왔습니다. 호주 라트로브대학교 연구팀은 치주염 세균 무리 중 한 종만 파지로 없애도 전체 세균막이 무너지는 것을 실험실에서 확인했고 중국 우한대학교 연구팀은 파지가 세균을 터뜨릴 때 쓰는 효소만 뽑아 나노물질에 담아 생쥐의 뿌리 끝 감염을 치료했습니다. 두 연구 모두 아직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이전 단계입니다.

세균만 골라 죽이는 바이러스

파지는 세균에만 감염되는 바이러스입니다. 목표로 삼은 세균 표면의 특정 구조를 알아보고 달라붙은 뒤 유전물질을 세균 속에 주입하고 세균 안에서 증식하다가 세포를 터뜨려 밖으로 퍼져 나갑니다. 사람 세포에는 이 구조가 없어 감염시키지 못하고 표적으로 삼지 않은 다른 세균 종에도 대부분 작용하지 않습니다.

박테리오파지가 세균 표면에 붙어 유전물질을 주입하고 세균을 터뜨려 퍼져나가는 3단계 과정도

이 특이성이 항생제와 갈리는 지점입니다. 항생제는 넓은 범위의 세균을 한꺼번에 죽이는 대신 입안에 있던 유익균까지 함께 줄이고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균이 내성을 갖기 쉽습니다. 항생제로 듣지 않는 균이 늘면서 치과에서도 파지 치료가 항생제를 보완하거나 대신할 방법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잇몸 밑 치석을 긁어내는 스케일링이 치주염 치료의 기본이지만 치주낭이 깊어질수록 이 방법만으로 세균을 다 걷어내기 어렵다는 점도, 파지를 보조 치료로 연구하게 만든 배경입니다. 세균막 속까지 파고들 수 있고 독성이 낮으며 표적균 안에서 스스로 증식해 양을 불릴 수 있다는 점이 파지 치료의 강점으로 꼽힙니다.

한 종만 없애도 전체 막이 무너졌다

라트로브대학교 연구팀은 치주염 세균 무리에서 다른 세균들을 이어주는 발판 역할을 하는 푸소박테리움 폴리모르품균(Fusobacterium polymorphum)만 골라 죽이는 파지 FNU1을 실험했습니다. 이 균은 초기에 자리 잡는 세균과 나중에 합류하는 병원성 세균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연구팀은 실험 접시에서 이 균 하나만 있는 막, 여기에 다른 두 세균을 더한 막, 그리고 치주염의 대표 원인균인 포르피로모나스 진지발리스균(Porphyromonas gingivalis)까지 넣은 네 종 혼합막을 각각 만들었습니다. FNU1으로 푸소박테리움만 없앴는데도 네 종이 뒤섞인 복잡한 막에서까지 전체 막의 양과 세균 밀도가 뚜렷하게 줄었습니다. 세균막을 이루는 모든 종을 다 죽이지 않고 발판 역할을 하는 한 종만 제거해도 병을 일으키는 세균 공동체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잇몸 틈 속 세균막에서 발판 역할을 하는 세균 하나만 사라지면 나머지 세균이 흩어지며 막 전체가 무너지는 개념도

같은 연구팀은 앞서 관련 세균인 푸소박테리움 뉴클레아툼균(Fusobacterium nucleatum)을 겨냥한 파지 세 종도 분리해 이 균과 진지발리스균이 함께 만든 막을 무너뜨리는 것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다만 이 균들의 유전체에는 파지에 저항하는 방어 체계도 함께 있어 파지를 그대로 적용하기까지는 더 많은 확인이 필요합니다. 두 실험 모두 실험 접시 안의 결과이며 실제 잇몸 틈 속에서 확인된 결과는 아직 없습니다.

치아 뿌리 끝 감염에는 효소만 추려 나노물질에 담았다

근관치료를 마친 뒤에도 세균이 뿌리 끝 주변에 남아 염증을 일으키는 치근단치주염은 엔테로코쿠스 파에칼리스균(Enterococcus faecalis)이 흔한 원인입니다. 이 균은 좁고 구불구불한 근관 속 깊숙이 숨어 소독액으로도 잘 제거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 우한대학교 연구팀은 살아있는 파지 대신 파지가 세균 세포벽을 터뜨릴 때 쓰는 효소인 라이신만 따로 뽑아 파에칼리스균에 맞췄습니다. 이 효소를 ZIF-8이라는 나노 크기의 금속 유기 골격체 안에 담아 서서히 흘러나오게 만든 물질(LysPd138@ZIF-8)을 만들어 치근단치주염에 걸린 생쥐에 실험했습니다. 그 결과 신경 조직 속 파에칼리스균이 사라졌고 CT 촬영에서 뼈가 녹아든 부위가 줄었습니다. 뼈를 만드는 유전자의 활동도 늘어 새 뼈가 자라는 것까지 확인됐습니다. 세균을 없애는 효과와 뼈를 재생하는 효과를 한 물질에 담은 셈입니다. 다만 이 결과도 생쥐 실험 단계이고 사람의 근관은 훨씬 가늘고 복잡하게 갈라져 있어 같은 효과가 그대로 재현될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항생제 내성균이 늘어나면서 치과 영역에서도 특정 세균만 골라 공략하는 파지 기반 치료가 두 갈래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파지로 세균막의 핵심 종을 무너뜨리는 방식과 파지의 효소만 추출해 나노물질에 실어 나르는 방식입니다. 두 방식 모두 아직 실험실과 동물 단계에 머물러 있어 사람의 잇몸이나 근관 안에서 같은 효과를 내는지는 앞으로의 임상시험이 답할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