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몸에 마취 주사를 놓을 때 가장 아픈 순간은 바늘이 들어가는 순간이 아니라 약물이 빠르게 밀려 들어가면서 조직이 순간적으로 부풀 때입니다. 이 압력을 사람 손 대신 컴퓨터가 미세하게 조절해 아주 천천히 흘려 넣는 장치가 최근 몇 년 사이 소아치과를 중심으로 자리를 넓히고 있습니다. 임상시험 열네 편을 모아 다시 검토한 논문에서는 이 방식이 전통 주사기보다 통증 점수를 뚜렷하게 낮추고 환자를 더 협조적으로 만든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국내에서는 흔히 '디지털 무통마취' 또는 '컴퓨터 제어 마취'로 불립니다.
손이 아니라 컴퓨터가 약물을 밀어 넣는다
전통적인 주사기는 치과의사가 손으로 피스톤을 눌러 약물을 넣기 때문에 속도와 압력이 순간순간 달라집니다. 이 압력이 튀는 순간 잇몸 조직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통증 신호가 발생합니다. 컴퓨터 제어 마취(CCLAD, computer-controlled local anesthesia delivery)는 모터가 달린 장치가 정해진 속도로 약물을 일정하게 밀어 넣어 이 압력 변화를 없앱니다. 이 장치들은 대개 바늘도 가늘게 설계해 삽입 순간의 자극까지 함께 줄입니다.

겁먹은 성인 환자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CCLAD는 원래 주사바늘을 무서워하는 어린이를 달래려고 소아치과에서 먼저 자리 잡았습니다. 실제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여러 무작위 비교 시험에서 CCLAD 그룹은 전통 주사기 그룹보다 통증 점수와 불안 점수가 모두 낮게 나왔고 얼굴 표정이나 울음 같은 행동 관찰 지표도 더 안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결과가 어린이에게만 해당하지는 않았습니다. 성인 백서른 명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교차 시험에서는 위턱 앞니 부위에 주사할 때 처음에는 아주 느리게 흘려 넣다가 서서히 속도를 올리는 '램프업' 방식의 컴퓨터 제어 장치(덴타펜, Dentapen)를 쓴 쪽이 전통 주사기보다 통증이 뚜렷하게 낮았고 참가자의 4분의 3이 다음에도 이 방식을 선택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치과 공포증이 있는 성인에게도 같은 원리가 통한다는 뜻입니다.
장비마다 통증을 줄이는 정도가 갈렸다
CCLAD라고 다 같은 성능은 아니었습니다. 어린이 서른 명을 대상으로 같은 입에서 한쪽은 더 완드 STA(The Wand STA)로 다른 쪽은 칼라젝트(Calaject)로 각각 주사해 비교한 시험에서는 칼라젝트 쪽의 통증 점수가 더 완드 STA보다 낮게 나왔습니다. 다만 칼라젝트는 약물을 넣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완드보다 뚜렷하게 길었습니다. 슬리퍼원(SleeperOne S4)을 전통 주사기와 비교한 시험에서도 슬리퍼원 쪽 통증이 낮게 나왔는데 같은 장치를 써도 젖니에 놓을 때가 영구치에 놓을 때보다 아팠고 나이가 어릴수록 통증을 더 크게 느꼈습니다. 장비 이름과 나이, 잇몸 상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라 '컴퓨터 마취'라는 말만 보고 다 같은 경험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시간과 비용은 그대로 남는다
CCLAD의 단점도 여러 논문에서 반복해 지적됐습니다. 정해진 속도로 천천히 흘려 넣는 구조라 전통 주사기보다 약물을 넣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깁니다. 국내에서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라 병원마다 추가 비용을 매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 장치가 유용한 자리가 있습니다. 뼈에 직접 약물을 넣는 뼈속마취나 치아 인대 사이에 넣는 인대강내마취처럼 손으로는 압력 조절이 까다로운 주사법에 컴퓨터 제어 장치(더 완드 STA·퀵슬리퍼)를 쓴 어린이 백 명 대상 시험에서는 신경 전체를 마비시키는 전통적인 하치조신경블록보다 주사 자체의 통증과 시술 후 불편감이 적었고 아이들도 이 방식을 더 선호했습니다. 결국 이 장치가 바꾼 것은 마취를 아예 없앤 게 아니라 바늘이 들어간 뒤 약물이 퍼지는 그 몇 초 동안의 압력이었고 그 몇 초를 줄인 결과가 통증 점수와 협조도 양쪽에서 여러 나라 연구에서 반복해 확인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