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의 충치, 특히 이미 구멍이 난 유치는 마취와 드릴 없이는 치료가 어렵습니다. 겁이 많거나 나이가 어려 진료 의자에 앉아 있기 힘든 아이는 전신마취까지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미국에서 어린이 8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규모 임상시험이 이 문제에 답 하나를 내놓았습니다. 은다이아민플루오라이드(SDF)라는 액체를 작은 붓 모양 도구로 충치 부위에 10초 남짓 바르기만 해도 진행을 상당 부분 멈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충치 구멍에 미세브러시로 은다이아민플루오라이드(SDF) 용액을 바르는 모습

뚫지 않고 멈추는 충치 치료

SDF는 은 이온과 불소 이온을 함께 담은 투명한 액체입니다. 은 이온이 충치를 만드는 세균의 증식을 억제하고 불소 이온이 산에 녹은 치아 겉면(상아질)을 다시 단단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썩은 부분을 갈아내고 그 자리를 재료로 메우는 일반적인 때우기 치료와 달리 SDF는 썩은 조직을 그대로 둔 채 겉면에 발라 세균 활동을 멈추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마취 주사도 드릴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830명을 지켜본 임상시험이 낸 숫자

미국 국립치과두개안면연구소(NIDCR)가 예산을 대고 미시간대학 등 여러 대학이 함께 진행한 이번 3상 임상시험은 생후 12개월에서 71개월 사이 이미 심한 충치를 겪고 있는 어린이 830명을 모았습니다. 이때 쓴 제품은 미국 엘리베이트 오럴케어(Elevate Oral Care)사가 만든 38% 농도의 SDF 제품 어드밴티지 어레스트(Advantage Arrest)였고 아이들은 이 제품과 겉보기에 똑같은 위약 액체 중 하나를 무작위로 발랐습니다. 6개월 뒤 다시 검사했더니 SDF를 바른 이는 54.0%에서 충치 진행이 멈췄지만 위약을 바른 이는 22.5%에 그쳤습니다. 두 번째로 발랐던 8개월째까지 봐도 SDF 쪽이 50.2%, 위약 쪽이 17.4%로 차이가 유지됐습니다. 통증이 늘었다는 신호는 두 군에서 차이가 없었고 부작용이 나타난 비율도 SDF군 47.3%, 위약군 43.3%로 비슷해 대부분 가볍거나 중간 정도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위약만 발라도 충치 5개 중 1개꼴로 저절로 진행이 멈췄다는 것입니다. 충치는 진행하다가도 양치질이나 식습관이 바뀌면 저절로 멈추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번 시험에 참여한 아이들은 나이가 어리고 충치가 이미 심한 고위험군이어서 나이가 더 많은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들에서 나온 64~90%대의 멈춤 비율보다는 낮았습니다. 연구진은 어린아이일수록 치료 중 치아를 마른 상태로 유지하기 어렵고 잠들기 전 우유병을 물고 자는 습관 등 충치를 키우는 생활 습관이 남아 있기 때문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불소바니시·때우기와 비교하면

SDF가 다른 예방 치료보다 나은지도 별도 연구들이 살펴봤습니다. 6~12세 어린이의 어금니에 생긴 초기 충치(아직 구멍까지 나지 않은 단계) 139개를 SDF와 요오드화칼륨을 함께 바른 그룹과 5% 불소바니시를 바른 그룹으로 나눈 연구에서는 6개월 뒤 SDF 그룹의 88.1%, 불소바니시 그룹의 65.6%가 충치 없는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두 방법 모두 효과가 있었지만 SDF 쪽이 더 앞섰습니다.

액체를 바르는 대신 썩은 부분을 얕게 긁어내고 때우는 아트(ART, 마취 없이 최소한으로 삭제 후 때우기) 치료와 견준 메타분석도 있습니다. 여섯 건의 무작위 비교시험을 모은 결과 SDF가 ART보다 조금 더 나은 성적을 보였지만 포함된 연구 수 자체가 많지 않아 두 방법 모두 선택지로 고려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정리했습니다.

검게 물드는 이가 감수하는 값

SDF에는 뚜렷한 단점이 있습니다. 은 이온이 치아의 썩은 부분과 반응하면서 그 자리를 짙은 갈색이나 검은색으로 물들입니다. 이 색은 지워지지 않고 치료가 잘 될수록 오히려 더 진하게 남습니다. 그래서 앞니처럼 보이는 자리보다는 어금니나 곧 빠질 유치처럼 눈에 덜 띄는 자리에 주로 씁니다.

일반 때우기 치료를 받은 치아와 은다이아민플루오라이드(SDF) 치료로 충치 부위가 검게 착색된 치아를 나란히 비교한 단면도

요오드화칼륨을 SDF 위에 덧발라 착색을 줄여 보려 한 연구에서는 초반 2주 정도는 착색이 덜해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차이가 사라졌고 부모들의 만족도도 제각각이었습니다. 또 하나 기억할 점은 SDF가 충치를 없애는 치료가 아니라 진행을 멈추는 치료라는 것입니다. 이번 임상시험에서도 절반 가까운 충치는 한두 번 발라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SDF 하나로 충치 관리를 끝낼 수 있다기보다는 양치질, 정기 검진과 함께 쓰는 방법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 성분이 2014년부터 성인의 시린 이 치료용으로만 승인돼 있었습니다. 어린이 충치에 쓰는 것은 그동안 허가 범위 밖의 사용이었습니다. 이번 임상시험은 그 범위를 넓히기 위한 근거로 진행됐고 검게 물드는 자리를 감수할 수 있는 아이라면 드릴 없이 충치 진행을 멈출 실질적인 선택지 하나가 늘어난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