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 뿌리에 생기는 충치는 잇몸이 내려앉아 드러난 뿌리 표면에서 시작됩니다. 법랑질이 없는 이 표면은 무르고 울퉁불퉁하며 늘 침에 젖어 있어 어떤 재료를 발라도 오래 붙어 있기 어렵습니다. 중국 쓰촨대학 연구팀이 먹장어가 위험할 때 내뿜는 방어용 점액에서 원리를 빌려 물을 만나면 액체에서 젤로 스스로 굳는 치아 뿌리 충치용 재료를 2024년에 내놓았습니다.
왜 다루기 어려운가
2020년 국제 전문가 델파이 합의문은 뿌리 병소는 위치상 접근이 어렵고 환자 협조도 쉽지 않아 통상적인 때우기 치료 대신 치태 관리와 불소 도포로 관리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유리아이오노머 시멘트로 장기간 안정시키는 완화적 접근을 택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밝혔습니다. 2024년 코크란 문헌고찰도 은다이아민플루오라이드(SDF)가 새 뿌리 충치를 막는 데 중간 정도 신뢰도의 근거가 있다면서도 불소바니시나 유리아이오노머와 비교한 근거는 매우 불확실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기존 방법은 세균 억제나 미네랄 보충에 초점이 있을 뿐 울퉁불퉁하고 젖은 표면에 재료를 붙잡아 두는 문제는 따로 풀지 못했습니다.
먹장어가 내뿜는 점액에서 빌려온 원리
먹장어는 포식자를 만나면 점액을 내뿜고 이는 바닷물에 닿으면 젤로 변해 아가미를 막아버립니다. 쓰촨대학 화시구강병원 연구팀은 이 물 반응성 원리를 빌려 실크 단백질(피브로인)과 타닌산, 흑린(black phosphorene, 인 원자로 된 얇은 2차원 소재), 요소를 섞은 액체 재료를 만들었습니다. 요소가 피브로인과 타닌산의 수소 결합을 끊어 두기 때문에 재료는 액체 상태로 뿌리 표면의 틈과 상아세관(상아질 속 미세한 관) 속까지 스며듭니다. 이후 침에 닿으면 요소가 빠져나가며 수소 결합이 다시 이어져 그 자리에서 젤로 굳고 표면 굴곡에 맞물립니다. 흑린은 이 그물 구조의 연결을 촘촘하게 만들어 젖은 환경에서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접착력을 냅니다.

세균을 죽이고 미네랄도 채운다
자리를 잡은 젤 층은 빛을 쬐면 세균을 죽이는 광선치료 효과를 내는 동시에 치아 상아질의 재광화를 촉진합니다. 붙는 문제를 먼저 풀어야 다른 기능도 힘을 발휘한다는 뜻입니다. 흑린 광선치료의 실제 위력은 같은 시기 원저우의대 연구팀의 결과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홍합 접착 단백질에서 착안한 비슷한 흑린 하이드로젤에 빛을 쬐자 뮤탄스균과 상그이스균이 약 99퍼센트 사라졌고 쥐 충치 모델에서도 예방 효과가 확인됐습니다. 이 연구는 치아머리의 법랑질을 대상으로 했지만 흑린이 매개하는 광선 살균 원리는 같습니다.

아직은 접시 위 실험, 뒤이은 개선판
이 재료는 아직 발치된 치아를 이용한 실험실 단계 결과이고 동물이나 사람 대상 시험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같은 연구팀은 2025년 구아니딘염산염과 인산칼슘 나노입자를 더한 후속 재료를 내놓았습니다. 냉동건조 분말로 90일을 보관해도 주사기에서 0.8뉴턴의 약한 힘만으로 매끄럽게 밀려 나와 충치로 파인 자리를 채우고 그 자리에서 굳어 상아세관을 막는 성능을 실험실에서 확인했습니다. 진료실에서 바로 다룰 수 있는 형태를 향한 개선이 이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뿌리 충치 관리는 세균 억제나 미네랄 보충 중 한 기능만 가진 재료를 접근하기 어려운 표면에 반복해서 발라야 했습니다. 먹장어의 물 반응성 접착 원리를 빌린 이 재료는 붙는 문제부터 해결하고 그 위에 살균과 재광화 기능을 얹었다는 점에서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 다만 사람의 입안에서 같은 성능이 나오는지는 다음 단계 연구가 답해야 할 몫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