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를 뺀 뒤 며칠 동안 먹는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를 줄이려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질(기름) 알갱이 속에 마취 성분을 겹겹이 가둬 서서히 흘려보내는 리포좀 부피바카인을 사랑니 발치에 함께 쓰면 오피오이드 복용량이 줄어든다는 임상시험과 메타분석 결과가 최근 나왔습니다. 다만 환자가 실제로 느끼는 통증 자체는 기존 마취보다 뚜렷하게 줄지 않았습니다.

몇 시간짜리 마취를 며칠짜리로

사랑니를 뺄 때 쓰는 리도카인이나 부피바카인 같은 국소마취제는 신경 주변에 놓으면 몇 시간 안에 약효가 사라집니다. 통증이 다시 시작되면 환자는 처방받은 오피오이드로 넘어가게 됩니다. 관련 연구들은 사랑니 발치를 청소년이 오피오이드를 처음 접하는 대표적인 계기로 꼽아 왔습니다.

리포좀 부피바카인은 하나의 지질 알갱이 안에 작은 공간을 여러 겹으로 나눠 그 안에 부피바카인을 채운 제형입니다. 바깥쪽 막부터 순서대로 서서히 터지면서 약물을 내보내는 구조라 주사 한 시간 안에 혈중 농도가 한 번 오르고 12~36시간 뒤 다시 한 번 올라 최대 96시간까지 약효가 이어진다는 것이 앞선 약동학 연구로 확인돼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엑스파렐이라는 이름으로 탈장 수술이나 무릎 인공관절 수술 등에 먼저 쓰여 왔고, 다른 외과 영역을 검토한 문헌은 기존 부피바카인과 부작용 양상은 비슷하면서 입원 기간과 진통제 관련 부작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정리했습니다.

여러 겹의 작은 공간으로 나뉜 구형 리포좀 입자에서 약물 입자가 서서히 방출되는 모습
다중소포 리포좀 구조 안에 담긴 마취 성분이 막이 터질 때마다 조금씩 새어 나오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 AI 이미지

사랑니 발치에서는 오피오이드만 줄었다

가장 최근 발표된 비교시험은 사랑니 4개를 한 번에 뽑는 평균 17세 환자 93명을 표준 마취만 받는 군과 표준 마취에 리포좀 부피바카인을 더한 군으로 나눴습니다. 수술 후 5일 동안 오피오이드를 한 알이라도 먹은 비율은 53%에서 26%로, 모르핀으로 환산한 누적 복용량은 12.4mg에서 5.7mg으로 줄었습니다. 그런데 두 군이 실제로 보고한 통증 점수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관련 연구 4편, 858명을 모은 메타분석도 같은 그림을 보여줍니다. 오피오이드 사용량 감소는 통계적으로는 유의했지만 48시간 기준 모르핀 환산 1.2mg 차이에 그쳐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크기는 아니라고 저자들은 밝혔습니다. 통증 점수 차이는 유의하지 않았으며 연구마다 결과가 크게 갈렸습니다. 앞서 2025년 나온 좌우 비교시험은 리포좀 부피바카인 쪽 통증 점수가 소폭 낮았고 발치가 복잡할수록 그 차이가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2024년 발표된 임상시험은 위약보다 통증 점수가 낮았지만 시험 진행 중 규정 위반이 많아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습니다.

통증은 그대로여도 오피오이드를 줄이려는 이유

세 연구 모두 통증 완화 효과는 크지 않거나 확실치 않다고 밝히면서 오피오이드 복용 자체를 줄이는 데는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사랑니 발치가 청소년이 처음으로 오피오이드를 처방받는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통증 크기와 별개로 처방되는 알약 수 자체를 줄이는 것을 하나의 목표로 삼은 셈입니다.

주사를 놓는 순간 자체의 통증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레이저를 미리 쬐는 방식이 따로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리포좀 부피바카인은 주사 순간이 아니라 마취가 풀린 뒤 며칠에 걸친 통증과 진통제 사용을 겨냥한다는 점에서 다른 자리를 노립니다.

국내에는 아직 없는 마취제

리포좀 부피바카인은 국내에는 아직 허가돼 있지 않습니다. LG화학은 개발사인 파시라 바이오사이언스와 아시아 지역 독점 판매 계약을 맺고 올해 안에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해 내년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수술용 트레이 위에서 장갑을 낀 손이 주사기와 약병을 준비하는 모습
구강외과 진료실에서 마취 주사기와 약병을 준비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사진. AI 이미지

리포좀 부피바카인은 마취가 듣는 시간을 며칠로 늘리는 기술이지 발치 통증 자체를 크게 줄이는 기술은 아닙니다. 오피오이드 복용량을 줄인다는 결과는 여러 연구에서 반복됐지만 그 폭은 크지 않았고 통증 완화 효과는 연구마다 엇갈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