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장치를 떼고 나서 앞니에 하얗게 뜬 자국을 발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자국은 법랑질(치아 겉을 감싸는 단단한 층) 표면 바로 아래에서 미네랄이 빠져나가 생긴 백색반점병소(화이트스팟)입니다. 세균이 표면을 파먹어 생긴 구멍과 달리 아직 되돌릴 수 있는 단계인데 최근 몇 년 사이 불소 대신 자가조립펩타이드(self-assembling peptide, P11-4)라는 재료로 이 병소를 채우는 임상시험 결과가 잇따라 나왔습니다. 이 펩타이드를 상품화한 대표적 재료가 큐로돈트(Curodont)라는 이름으로 치과에 공급되는 제품입니다.
겉을 굳히는 불소, 속을 채우는 자가조립펩타이드
불소는 침에 있는 칼슘과 인 이온을 끌어와 법랑질 겉면에 새 결정을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겉면부터 단단해지는 탓에 정작 그 아래 비어 있는 부분까지는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자가조립펩타이드는 붓으로 바르면 병소의 다공성 구조 속으로 스며들어 스스로 뭉쳐 그물 모양의 뼈대를 만들고 그 뼈대를 발판 삼아 새로운 하이드록시아파타이트(치아를 이루는 미네랄) 결정이 자라나게 합니다. 속에서부터 채워 올라가는 방식입니다.

빛으로 재면 속이 더 채워졌다
초기 충치 병소를 다룬 임상시험 7편을 모아 다시 살펴본 체계적 문헌고찰에서는 레이저형광측정기(DIAGNOdent, 치아 속 미네랄 밀도를 빛으로 재는 장비)로 잰 값이 자가조립펩타이드를 쓴 쪽에서 23~41퍼센트 더 줄었습니다. 이 수치가 줄었다는 것은 그만큼 속이 다시 채워졌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같은 연구들에서 육안으로 매기는 충치 등급(ICDAS)은 두 재료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비슷해도 속은 자가조립펩타이드 쪽이 더 채워졌다는 뜻입니다.

교정 중인 청소년과 유치에서도 확인됐다
18개월 동안 고정식 교정장치를 낀 청소년 25명을 추적한 무작위 대조시험 결과 불소 젤만 바른 그룹은 치아 표면의 14.5퍼센트에서 새로운 백색반점이 생겼습니다. 자가조립펩타이드를 섞은 젤을 일주일에 두 번 함께 바른 그룹에서는 이 비율이 7.2퍼센트로 줄었습니다. 표본이 크지 않은 시험이라 조심스럽게 읽어야 하지만 유치에 생긴 백색반점 66곳을 대상으로 한 다른 임상시험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습니다. 자가조립펩타이드에 불소를 더한 큐로돈트 리페어 플루오라이드 플러스를 집중적으로 바른 그룹은 일반 불소바니시(듀라핏)보다 병소가 멈춘 경우도 활동성 병소가 줄어든 경우도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많았습니다. 카제인 성분의 불소바니시(MI바니시)와 견줬을 때는 처음 몇 달은 비슷하다가 9개월이 지나서야 큐로돈트 쪽이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쓰면 불소에 밀리기도 했다
모든 시험이 자가조립펩타이드 손을 들어준 것은 아닙니다. 백색반점 39곳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는 자가조립펩타이드만 단독으로 바른 그룹이 아르기닌이 든 불소바니시나 인산칼슘이 든 불소바니시를 바른 그룹보다 9개월 뒤 병소의 색과 크기가 개선되는 정도에서 오히려 뒤처졌습니다. 이 시험은 불소를 섞지 않은 자가조립펩타이드만 썼고 측정도 색차계로 표면 색과 크기 변화를 쟀습니다. 최근 나온 임상시험에서는 아직 상품화되지 않은 실험 재료인 인산화 나노키토산이 자가조립펩타이드보다도 병소를 더 크게 줄였다는 결과까지 나왔습니다. 초기 충치를 되돌리는 재료 경쟁이 자가조립펩타이드에서 멈추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가조립펩타이드는 이미 구멍이 난 충치를 메우는 재료가 아니라 아직 구멍이 나지 않은 초기 병소에서만 쓸 수 있는 재료입니다. 구멍이 난 뒤에는 다시 채워지지 않으므로 때우기 치료나 SDF 같은 진행 정지 치료로 넘어가야 합니다. 백색반점이 눈에 띈다면 치과에서 아직 되돌릴 수 있는 단계인지부터 확인해 볼 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