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진료 의자에 앉은 아이에게 헤드셋을 씌우고 화면 속 다른 세계를 보여주면 실제로 불안과 통증이 줄어드는지를 확인한 연구들이 최근 몇 년 사이 쌓였습니다. 여러 나라의 무작위 비교 시험을 모은 최근 메타분석들을 보면 결과는 나이에 따라 갈렸습니다. 어린이에게서는 가상현실(VR)이 불안과 통증을 뚜렷하게 낮췄지만 성인에게서는 통증만 줄었을 뿐 불안을 낮추는 효과는 통계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헤드셋을 쓰고 시야 전체를 가리는 몰입형 방식이 화면만 보여주는 방식보다 심박수를 더 낮췄다는 결과도 나왔습니다.

헤드셋을 쓰면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

가상현실 기기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머리에 쓰는 헤드셋으로 시야 전체를 화면으로 가리는 몰입형과, 태블릿이나 스마트폰 화면만 보여주는 비몰입형입니다. 2026년 소아치과 임상시험 한 편에서는 지오 다이브(Jio Dive) 헤드셋에 스마트폰을 끼워 사용했습니다. 이 방식이 불안과 통증을 줄이는 원리로 연구자들이 꼽는 것은 '제한된 주의 자원'입니다. 사람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감각 정보는 정해져 있어서 시야와 청각을 화면 속 다른 장면으로 채우면 바늘이나 기구가 닿는 감각에 쓸 주의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설명입니다.

아래 그림은 작동 원리를 설명한 개념도이며, 도넛 차트의 비율은 실제 측정값이 아닙니다.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주의 자원은 한정돼 있어 가상현실 화면과 소리에 주의를 많이 쓸수록 바늘과 기구의 감각에 남는 주의가 줄어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도넛 차트 그림

마취 주사 자체의 압력을 다뤄 통증을 줄이는 디지털 무통마취가 약물이 들어가는 순간의 자극을 줄이는 접근이라면, 가상현실은 그 감각에서 아이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접근이라는 점에서 다릅니다.

아이는 불안도 통증도 줄었다

무작위 비교 시험 열두 편, 아동 818명을 모은 메타분석에서는 가상현실을 쓴 아이들의 불안 점수가 대조군보다 뚜렷하게 낮았고 통증 점수와 심박수도 함께 낮아졌습니다. 또 다른 메타분석에서도 어린이의 불안과 통증 모두에서 가상현실 쪽이 유의미하게 개선됐습니다. 다만 연구들 사이의 결과 편차가 크고 발표된 연구 대부분이 효과가 있었다는 쪽으로 치우쳐 있어 실제 효과 크기는 이보다 작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인의 불안 감소 효과는 아직 불확실하다

어린이와 성인 자료를 함께 모은 메타분석에서는 성인 결과가 어린이와 달랐습니다. 통증은 성인에게서도 줄었지만 불안 점수는 개선 폭의 신뢰구간이 0을 포함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는 이 연구들만으로는 확인되지 않았고, 연구팀은 콘텐츠가 연구마다 제각각이고 성인 대상 연구 수 자체가 적다는 점을 원인으로 꼽으며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몰입형과 비몰입형, 심박수 감소에 차이

어린이 2,505명을 포함한 연구 37편을 검토하고, 이 가운데 13편 819명의 자료를 메타분석한 연구도 있습니다. 여러 비교 가운데 몰입형과 비몰입형을 비교했을 때는 몰입형 쪽 심박수가 분당 평균 8.12회 더 낮았습니다(95% 신뢰구간: 1.56~14.69회 감소). 819명 전부가 이 두 방식의 직접 비교에 포함된 것은 아닙니다.

몰입형 헤드셋을 쓰고 편안히 앉은 아이와 태블릿 화면만 보는 아이를 나란히 비교한 그림

치과의사가 기구를 미리 보여주고 설명하는 전통적인 행동관리 기법(Tell-Show-Do)과 비교해도 몰입형 쪽 심박수가 더 낮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지만 이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실제 배경에 그래픽을 겹쳐 보여주는 증강현실(AR)은 아직 연구가 많지 않아 뚜렷한 결론을 내리기엔 이릅니다.

자폐 스펙트럼 아동에게도 나타났다

비침습적 치과 진료가 필요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 8~15세 열아홉 명이 완료한 교차 비교 시험에서는 가상현실을 쓴 진료에서 침 속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낮아졌고 아이들이 스스로 느낀 통증과 불안 점수도 함께 개선됐습니다. 표본이 작고 진료 범위가 제한된 예비 연구여서 모든 자폐 스펙트럼 아동이나 침습적 치료에 같은 결과를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쌓인 연구들은 가상현실이 어린이 치과 진료에서 불안과 통증을 함께 줄이는 도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성인의 불안 감소 효과는 연구가 더 필요하며, 장치 방식과 측정 지표에 따라서도 결과를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