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담배가 폐암과 구강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대규모 과학적 리뷰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동안 담배보다 안전한 금연 보조 수단으로 여겨져 온 전자담배에 근거 있는 경고가 나온 셈입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UNSW) 암 연구자 버나드 스튜어트(Bernard Stewart) 교수 연구팀은 지난 3월 30일 국제 학술지 카시노제네시스(Carcinogenesis)에 이런 내용의 리뷰를 발표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습니다.

장기 추적 대신 세포와 동물 실험을 모았다

전자담배가 널리 쓰인 기간은 20년 남짓이라 암 발생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수십 년에 걸쳐 확인하는 역학 연구는 아직 부족합니다. 연구팀은 그 대신 임상 관찰과 동물 실험, 세포 수준의 기전 연구를 모아 전자담배 자체가 암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따졌습니다. 흡입 증기로 니코틴 관련 화합물과 중금속 등이 몸에 쌓이면 DNA가 손상되고 염증이 생기는데 이는 암으로 이어지는 초기 변화로 꼽힙니다.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는 전자담배 증기에 노출된 쥐들이 대조군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폐종양이 생겼고 방광에서도 암과 관련된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흰 가운을 입은 연구자가 장갑을 낀 손으로 배양접시의 시료를 조심스럽게 다루는 모습
실험실에서 동물 조직과 세포 시료를 분석하는 연구자를 담은 장면. AI 이미지

스튜어트 교수는 "입안과 폐의 세포와 조직이 전자담배 흡입으로 바뀐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결론이 정성적 평가이며 구체적인 위험 수치를 제시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같이 피우면 위험은 더 커진다

전자담배로 완전히 갈아타지 못하고 담배와 전자담배를 함께 피우는 이른바 '중복 사용'도 흔합니다. 연구팀에 따르면 담배 제품 사용자의 절반 넘게가 둘 중 하나도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동 저자인 UNSW 역학자 프레디 시타스(Freddy Sitas)는 "최근 미국 역학 자료를 보면 담배와 전자담배를 함께 쓰는 사람은 폐암 위험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네 배 더 높다"고 밝혔습니다.

어두운 거리에서 한 사람이 전자담배를 들고 있고 끝에서 옅은 증기가 피어오르는 모습
전자담배를 피우며 옅은 증기를 내뿜는 손을 클로즈업한 장면. AI 이미지

정책에도 물음표를 던진다

이번 리뷰는 뉴질랜드와 영국처럼 전자담배를 금연 보조 수단으로 받아들인 나라들의 정책을 다시 묻게 만듭니다. 전 세계 전자담배 시장은 300억에서 460억 달러(약 40조에서 62조 원) 규모로 추정되는데 알트리아그룹(Altria Group)과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British American Tobacco), 임페리얼브랜즈(Imperial Brands) 같은 담배 회사들이 이 시장에 많은 돈을 투자해 왔습니다. 시타스는 "전자담배를 두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80년을 또 기다릴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담배가 여전히 전자담배보다 훨씬 해로운 만큼 이번 결과를 흡연으로 돌아갈 이유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구강암은 초기에 발견할수록 치료 결과가 좋아 선별검사 기술도 함께 발전하고 있습니다. AI 구강암 스크리닝, 의심 부위로 표시돼도 암이 아닐 수 있다에서 다룬 것처럼 스마트폰 촬영만으로 의심 부위를 찾는 서비스도 늘고 있지만 확진을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한국은 올해 들어 전자담배 규제를 정비했습니다. 담배의 원료로 연초가 아닌 니코틴만 쓰는 합성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는 그동안 담배사업법상 담배로 분류되지 않아 건강경고 표시나 광고 제한, 금연구역 규제를 비켜갔습니다. 지난해 12월 23일 공포된 개정 담배사업법이 4개월 유예기간을 거쳐 올해 4월 24일부터 시행되면서 합성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도 일반 담배와 똑같이 규제받게 됐습니다. 담뱃갑 포장과 광고에 건강경고를 표시해야 하고 금연구역에서 사용하다 적발되면 10만 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다만 이번 리뷰가 제기한 폐암과 구강암 위험을 구체적으로 알리는 경고 문구는 아직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