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수돗물에 불소를 넣지 않는 지역의 어린이에게 처방되던 먹는 불소제가 시장에서 퇴출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정제와 물방울 형태로 나오는 어린이용 불소 보충제를 대상으로 과학적 검토에 들어가 제조사들에 자발적인 제품 철수를 요청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AP 통신에 따르면 FDA는 지난해 5월 이 계획을 밝히면서 같은 해 10월까지 검토를 마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의약품 승인을 공식적으로 철회하려면 수년이 걸리는 규칙 제정 절차를 거쳐야 하는 탓에 FDA는 제조사들의 자발적 철수를 유도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전했습니다.
치과에서 처방하던 알약의 정체
먹는 불소제는 정제나 물방울, 로젠지 형태로 나오며 사는 지역 수돗물의 불소 농도가 낮아 충치 위험이 높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치과의사나 소아과의사가 처방해 온 제품입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1962년부터 수돗물에 넣을 불소 농도 기준을 정해 왔고 물에서 부족한 불소를 알약으로 보충한다는 것이 이 제품의 기본 원리입니다. 미국치과의사협회(ADA)는 2010년 발표한 논문에서 충치 위험이 높은 16세 이하 어린이에게 이 보충제를 권고한 바 있습니다.
FDA와 치과계가 맞붙은 이유
FDA 커미셔너 마티 마카리는 삼킨 불소가 소화와 면역에 관여하는 장내 유익균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과다 섭취가 지능지수 저하와 관련 있다는 연구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그가 인용한 미국 국가독성프로그램 보고서는 캐나다·중국·인도·이란·파키스탄·멕시코에서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CDC 권고치의 두 배를 넘는 불소를 섭취했을 때 아동의 IQ가 낮아지는 경향을 본 것이어서 실제 처방되는 양과는 조건이 다른 연구입니다.
ADA는 이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반박했습니다. 브렛 케슬러 ADA 회장은 "이런 제안은 미국 농촌 지역을 건강하게 만들기보다 해치는 조치가 될 것"이라며 "국민 건강에 미칠 영향을 제대로 연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수돗물 불소화를 미국에서 처음으로 전면 금지한 유타주는 같은 시기 처방전 없이도 불소 보충제를 살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습니다. 물에서 불소를 빼는 지역이 늘어날수록 보충제를 찾는 수요는 커질 수밖에 없는데 FDA는 그 보충제까지 시장에서 밀어내려는 셈입니다. 미시간주 한 카운티가 수돗물 불소화를 중단하려다 치과의사들의 반대에 부딪힌 사정을 다룬 적이 있는데 이번엔 물이 아니라 알약을 둘러싼 다툼입니다. 올해 들어서는 중동 전쟁 여파로 미국 일부 지역의 수돗물 불소 농도 자체가 흔들린 사정도 따로 짚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애초에 이런 다툼이 벌어질 자리가 많지 않습니다. 1981년 경남 진해에서 시작된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은 민원 제기와 화학물질관리법에 따른 시설 안전점검 부담 등을 이유로 지자체들이 하나둘 손을 떼면서 2019년 전국에서 완전히 중단됐습니다. 지금 한국의 충치 예방은 치과에서 바르는 불소 도포와 불소 치약, 초등학교의 불소 용액 양치 사업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고 정제나 물방울 형태로 먹는 불소제는 임상에서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먹는 불소냐 아니냐' 논쟁이 한국에서는 애초에 다른 질문으로 바뀌는 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