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아이의 유치에 충치가 생겼습니다. 어차피 몇 년 안에 빠지고 영구치로 바뀔 치아인데, 그래도 꼭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짧은 답변
네, 빠질 치아라도 충치는 그대로 두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유치는 빠지기 전까지 씹는 기능과 발음을 돕고 그 밑에서 자라는 영구치가 제자리로 나올 공간을 지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 충치를 방치하면 통증이나 감염으로 아이가 고생할 뿐 아니라 영구치 쪽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습니다. 다만 모든 유치 충치가 같은 치료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충치가 어느 깊이까지 진행했는지, 치아 속 신경(치수) 조직이 살아 있는지에 따라 가벼운 처치부터 신경치료, 발치까지 선택이 달라집니다.
왜 그런가요?
유치는 빠지기 전까지 맡은 역할이 있습니다
유치는 저작(씹기), 발음, 심미를 담당하는 동시에 계승 영구치가 맹출(이가 나는 것)할 자리를 지켜 주는 기능적 역할을 합니다. 유치열은 생후 6~7개월경 아래 앞니부터 맹출을 시작해 생후 24~30개월 무렵에 완성되는데, 그 뒤로도 한동안 유치 아래에서는 영구치 치배(치아의 싹)가 자라고 있습니다. 유치가 제자리를 지켜 주지 않으면 그 공간이 좁아지거나 인접 치아가 기울어 나중에 나올 영구치가 자리를 잡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유치 충치는 번지는 속도가 빠른 편입니다
유치는 치관(잇몸 밖으로 드러난 치아 머리 부분)의 두께가 영구치의 절반 수준인 약 1mm로 얇습니다. 그만큼 충치가 신경 조직에 가까워지는 과정도 짧아질 수 있습니다. 치아우식증(충치)은 치면에 쌓인 세균막이 만드는 산이 치아의 무기질을 녹이면서 진행합니다. 이 파괴가 신경을 보호하는 단단한 조직을 무너뜨리면 세균과 그 분해산물이 신경 조직으로 침투하게 됩니다(치아우식증(충치)). 71개월 이하 어린이의 유치에서 충치나 그로 인한 상실·충전이 1개 이상 있는 상태를 유아기 우식이라고 부르는데, 이 가운데서도 진행이 빠른 형태는 상악(위턱) 앞니부터 시작해 신경이 노출되거나 치근(치아 뿌리) 끝에 농양(고름집)이 생기는 수준까지 이를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방치하면 통증과 감염을 넘어 영구치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충치가 신경까지 번져 치수(신경 조직)가 죽는 상태가 되어도 처음에는 별다른 증상이나 방사선 사진상의 변화가 없을 수 있습니다(치수괴사(신경 괴사)).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감염이 치근 끝 주변 조직으로 번져 급성 치근단 농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상태는 자발적인 통증과 함께 단단하고 붉은 종창(부어오름)을 동반합니다. 감염이 더 번지면 붓기가 더 뚜렷해질 수 있는데 그런 변화가 보이면 치과에서 바로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아이 치아 치료 후 볼과 눈 주변까지 붓는다면 기다려도 되나요?).

유치 치근 끝의 감염은 당장의 통증에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유치 중에서도 유구치(젖니 어금니)의 치근단 감염이 그 아래 자리한 영구 소구치(작은어금니)의 싹에 영향을 주면 소구치가 맹출할 때 갈색이나 황갈색으로 변색되거나 법랑질(치아 표면을 덮은 단단한 막) 일부가 결손된 상태로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유치 감염으로 생긴 국소적인 법랑질 결함을 터너 치아(Turner's tooth)라고 부릅니다. 지금은 빠질 치아의 문제처럼 보여도 그 밑에서 자라는 영구치의 겉모습에까지 흔적이 남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충치의 깊이에 따라 치료의 폭이 달라집니다
유치 충치 치료가 곧 신경을 건드리는 치료는 아닙니다. 신경이 노출되지 않은 깊은 충치라면 감염된 상아질(법랑질 안쪽의 조직)만 제거하고 신경에 가까운 단단한 상아질층은 남겨 와동(충치로 패인 부분)을 막아 주는 간접 치수치료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세균의 자극을 줄여 주면 남은 상아질이 수복상아질(치수를 보호하는 새로운 상아질)을 만들어 내는 원리입니다.

충치로 신경이 노출되었더라도 신경 조직이 살아 있다면 치관부(치아 윗부분)의 염증 조직만 제거하고 치근부 신경은 남기는 치수절단술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 치료는 우식으로 신경이 노출된 유치에서 표준적으로 쓰이는 술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치료 후에는 약제를 덮고 기성금속관(미리 만들어 둔 금속 재질의 씌우개)으로 치아 전체를 보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유치도 신경치료 후 크라운을 씌워야 하나요?).
신경 조직이 깊이 감염되었거나 이미 죽은 상태라면 신경 전체를 제거하는 치수절제술이 필요합니다. 유치는 시간이 지나면서 치근이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치아여서 신경을 제거한 자리는 몸에서 서서히 흡수되는 재료로 채워 치근이 흡수되는 과정을 방해하지 않도록 합니다.
치료 시기를 놓쳐 유치를 일찍 잃으면
감염이 심해 치료로 살리기 어렵거나 이미 치아 구조가 크게 무너진 경우에는 발치를 선택하게 됩니다. 이때 문제는 발치 그 자체보다 그 이후입니다. 유치가 제 나이보다 일찍 빠지면 대부분의 공간 상실이 발치 후 6개월 안에 일어나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어 영구치가 맹출할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공간유지장치를 장착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료를 미루다가 발치로 이어지면 충치 치료 한 번으로 끝날 일이 공간유지장치라는 또 다른 처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