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치를 치과용 드릴(핸드피스)로 깎아내는 대신 레이저로 제거하는 치료는 이미 여러 치과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물과 치아 속 무기질에 강하게 흡수되는 파장을 쏘는 치과용 레이저인 에르비움 야그(Er

) 레이저는 드릴보다 아프지 않고 마취가 덜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시간이 몇 배씩 더 걸린다는 점이 걸림돌이었습니다. 2026년 발표된 연구팀의 실험에서는 레이저를 쏘는 방식, 곧 한 번에 쏘는 시간(펄스 길이)과 초당 쏘는 횟수(반복 속도)를 바꿔 봤더니 건강한 치아를 지키는 정도는 드릴과 비슷하게 유지하면서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조합이 나타났습니다.

레이저는 어떻게 충치만 골라 깎아낼까

Er

레이저는 물과 하이드록시아파타이트(치아를 이루는 무기질)에 강하게 흡수되는 파장을 씁니다. 충치로 물러진 조직은 멀쩡한 치아보다 물을 많이 머금고 있어 레이저 에너지를 더 많이 빨아들이고 그 순간 조직 속 수분이 순식간에 끓어오르며 미세한 폭발처럼 조직을 날려 보냅니다. 회전하는 날로 갈아내는 드릴과 달리 물이 많은 자리를 골라 터뜨리는 방식이라 건강한 조직을 상대적으로 덜 건드리고 마찰열이 생기지 않습니다.

드릴은 회전하는 날로 충치와 건강한 치아를 함께 갈아내고, 레이저는 물기 많은 충치 조직에만 흡수돼 작은 기포가 터지듯 제거된다

치과 레이저가 쓰이는 자리는 충치 제거만이 아닙니다. 임플란트 주위염을 치료하는 레이저는 잇몸 속 세균을 줄이는 데 쓰이고 교정 통증을 줄이는 저출력 레이저는 조직을 깎지 않고 빛으로 자극만 줍니다. 이번 연구가 다루는 것은 그중에서도 충치 조직을 직접 깎아내는 용도입니다.

드릴과 비교하니 정밀함과 속도가 갈렸다

연구팀은 인공적으로 무기질을 뺀 치아 조각과 실제 충치가 있는 치아 두 가지로 레이저와 드릴을 견줬습니다. 인공 치아에서는 펄스를 길게(300마이크로초), 초당 20회로 쏜 가장 보수적인 레이저 설정이 건강한 치아 손실을 드릴의 8분의 1 수준으로 줄였습니다. 펄스를 짧게 줄이고 쏘는 횟수를 늘린 설정에서는 그 차이가 좁혀졌습니다. 실제 충치가 있는 치아에서는 레이저와 드릴이 남긴 건강한 치아 손실에 차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시간은 레이저가 드릴보다 2.6~3.3배 더 걸렸습니다.

속도를 가른 것은 펄스 길이였다

레이저 설정을 여러 가지로 바꿔 본 결과 반복 속도를 20회에서 40회로 늘리는 것만으로는 시간이 크게 줄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크게 줄인 것은 펄스 길이였습니다. 300마이크로초였던 펄스를 50마이크로초로 줄이고 반복 속도를 함께 높이자 치료 시간이 약 35퍼센트 짧아졌고 그러면서도 건강한 치아 손실은 늘지 않았습니다. 이 설정은 또한 충치 조직이 깎이기 시작하는 최소 에너지(문턱 에너지)도 낮췄습니다. 치아 10개 중 7개꼴로 문턱 에너지가 5~10밀리줄 낮아졌고 많게는 20밀리줄까지 낮아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펄스를 길게 쏘면 치료 시간이 길고, 짧게 자주 쏘면 치료 시간이 짧아진다

연구팀이 쓴 에너지는 60~70밀리줄로 임상에서 흔히 쓰는 150~250밀리줄보다 훨씬 낮은 값입니다. 앞선 연구들은 100밀리줄 이하에서는 치수(치아 신경과 혈관이 있는 조직) 세포의 생존에 영향이 없었지만 200밀리줄 이상에서는 생존율이 크게 떨어졌다고 보고했습니다. 신경에 가까운 깊은 충치에서도 낮은 에너지로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점이 이번 결과의 의미입니다.

이번 연구는 새 레이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쓰이는 레이저를 어떤 값으로 쏘느냐에 따라 속도와 조직 보존이 갈린다는 점을 확인한 것입니다. 최적화된 설정으로도 레이저는 드릴보다 여전히 두 배 넘게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신경에 가까운 깊은 충치를 다듬을 때 통증과 마취 부담을 줄이는 보조 도구로 쓰이고 넓은 충치를 빠르게 걷어내는 일은 드릴이 맡는 역할 분담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