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 겉면을 덮은 단단한 조직인 에나멜은 한 번 깎이거나 녹으면 스스로 다시 자라지 않습니다. 영국 노팅엄대학교를 비롯한 국제 연구팀이 2025년 11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한 연구에서, 에나멜이 자라던 과정을 흉내 낸 인공 단백질을 발치된 사람 치아 표면에 코팅해 깎여 나간 자리의 결정 구조와 단단한 정도(강도)까지 되살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다만 아직 살아 있는 입안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발치된 치아로 확인한 결과입니다.
에나멜은 왜 스스로 못 돌아올까
에나멜은 이가 날 때 법랑모세포라는 세포가 아멜로제닌이라는 단백질을 분비하면서 만들어집니다. 이 단백질이 그물처럼 얽힌 틀 구실을 해 인산칼슘 결정을 특정한 방향으로 촘촘히 쌓아 올리고 그 결과 치아 표면은 몸에서 가장 단단한 조직을 갖추게 됩니다. 문제는 이가 다 자라 입안으로 나오고 나면 법랑모세포가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그 뒤로 산성 음식이나 위산, 잘못된 칫솔질로 에나멜이 마모되거나 부식돼도 몸은 이를 다시 채워 넣지 못합니다. 지금 치과에서 시린 치아에 바르거나 메우는 치료를 하는 것도 이 때문으로, 깎인 표면 위에 다른 재료를 덧씌우거나 드러난 통로를 막는 방식이지 에나멜 자체를 그 구조 그대로 다시 만들어 주지는 못합니다. 치아 시림을 상아질 쪽에서 해결하려는 시도도 있는데, 상아질을 다시 만드는 펩타이드는 잠들어 있던 세포를 깨워 새 상아질을 만들게 하는 방식입니다. 이번 에나멜 기술은 세포 없이 단백질과 광물만으로 구조를 다시 쌓는다는 점이 다릅니다.

자라던 과정을 그대로 흉내 낸 인공 단백질
연구팀은 아멜로제닌과 비슷하게 움직이는 인공 단백질인 엘라스틴 유사 재조합 단백질(ELR)을 설계했습니다. 이 단백질을 칼슘 이온과 섞어 치아 표면에 바르고 말리면 아멜로제닌처럼 가늘고 긴 섬유 구조로 스스로 뭉칩니다. 이 섬유 틀을 인산칼슘과 불소가 녹아 있는 광물 용액에 담그면, 남아 있는 치아 결정의 방향을 그대로 이어받아 에나멜과 같은 인산칼슘 결정이 자라납니다. 미네랄이 표면 위에 무작위로 쌓이지 않고 원래 결정의 격자 방향을 그대로 이어받아 붙는 방식이어서, 연구팀은 이를 결정이 이어서 자라는 '에피택시 성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치아를 산으로 처리하고 씻어낸 뒤 이 용액을 발라 말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3~4분으로, 치과에서 쓰는 일반적인 시술 단계와도 맞아떨어집니다.
깎인 깊이에 따라 다른 구조가 자랐다
연구팀은 에나멜이 깎인 정도가 다른 세 부위, 즉 가장 바깥의 얇은 층과 그 안쪽의 기둥 모양 결정 다발로 이뤄진 층, 그리고 에나멜이 완전히 사라져 안쪽 상아질까지 드러난 부위에 각각 이 코팅을 발랐습니다. 열흘 동안 광물 용액에 담가 두자 세 부위 모두에서 2~10마이크로미터(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 이하) 두께까지 그 부위 고유의 결정 배열을 그대로 갖춘 새 광물층이 자랐습니다. 산으로 부식시켜 단단한 정도(경도)가 1.1기가파스칼까지 떨어졌던 에나멜은 코팅 뒤 3.1기가파스칼로 돌아와 원래 에나멜의 3.4기가파스칼에 가까워졌습니다. 완전히 드러난 상아질 위에서 자란 층은 탄성(강성)은 자연 에나멜과 비슷한 수준(58.3기가파스칼)까지 올라왔지만 경도는 1.4기가파스칼로 자연 에나멜의 일반적 범위(2.5~4기가파스칼)보다 낮았습니다. 연구팀은 새로 자란 결정의 배열 방향이 자연 에나멜과 달라서 생긴 차이로 설명했습니다.

씹고 닦고 산에 노출시켜도 구조가 버텼다
연구팀은 이 재생층이 실제 입안 환경을 버틸 수 있는지도 시험했습니다. 전동 칫솔질 1년어치에 해당하는 마모를 가해도 미세 구조가 무너지지 않았고, 씹고 가는 힘을 3년 반어치 가했을 때도 자연 에나멜과 비슷한 수준으로만 닳았습니다. 오히려 상아질 위에 자란 층은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상아질보다 덜 닳았습니다. 식초 정도 산도의 용액에 노출시켰을 때는 재생된 층이 자연 에나멜보다 단단한 정도를 더 잘 유지했는데, 연구팀은 코팅에 남아 있던 불소 성분 때문으로 분석했습니다. 서로 다른 세 사람의 침을 2주간 직접 묻혀 봐도 같은 결과가 재현됐습니다. 다만 이 모든 실험은 입 밖으로 꺼낸 치아로 진행됐으며, 연구팀도 살아 있는 입안에서의 검증이 다음 과제로 남아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연구는 세포가 아니라 자연의 성장 과정을 흉내 낸 단백질만으로 에나멜의 결정 구조와 기계적 성질을 동시에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을 깎인 정도가 다른 여러 부위에서 확인한 첫 사례입니다. 코팅제나 충전재로 표면을 덮던 지금까지의 방법과 달리 에나멜 자체를 다시 길러낸다는 점에서, 연구팀은 이 기술이 치아 부식과 시림 치료의 다음 단계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