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의 병원들이 온실가스라는 이유로 수술실에서 흔히 쓰던 마취 기체를 치우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치과에서도 불안한 환자를 달랠 때 쓰는 웃음가스, 즉 아산화질소도 병원 수술실 배관에서부터 뜯겨 나가고 있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올해부터 마취제 데스플루레인의 사용을 의료상 불가피한 경우로 제한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병원 약 600곳도 지난 10년 사이 이 약제의 일상적인 사용을 그만뒀다고 비영리단체 프랙티스 그린헬스가 집계했습니다.
마취 기체가 왜 온실가스인가
데스플루레인은 1992년 미국에 등장한 뒤 빠른 각성 효과로 널리 쓰였습니다. 그런데 2010년 무렵부터 과학자들이 이 약제의 온난화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데스플루레인은 100년 기준 지구온난화지수가 이산화탄소의 2530배에 이르고 다른 흡입 마취제보다 대기를 최대 50배 더 데웁니다. 2024년 나온 한 연구는 데스플루레인과 웃음가스로도 불리는 아산화질소가 함께 내뿜는 온실가스가 미국에서만 매년 휘발유차 1200만 대가 배출하는 양과 맞먹는다고 추산했습니다.
의료 분야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5%가량을 차지해 국가로 치면 다섯 번째로 많이 배출하는 나라와 맞먹습니다. 그중 마취 기체의 비중은 크지 않지만 수술실 배출량만 놓고 보면 최대 60%를 차지한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병원들은 배관부터 걷어낸다
뉴욕 최대 의료기관인 NYU 랑곤 헬스는 데스플루레인을 담는 기화 장치를 아예 치웠습니다. 수술실 벽마다 연결돼 있던 아산화질소 배관도 없애고 휴대용 봄베로 바꿨습니다. 배관은 새기 쉽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병원 시스템 프로비던스 세인트조지프 헬스의 환경 담당자 브라이언 체스브로는 낡은 배관에서 아산화질소의 90% 넘게 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는 계산을 50번 다시 했을 만큼 믿기 어려운 수치였다고 블룸버그 통신에 말했습니다. NYU 랑곤 헬스는 이런 조치로 직접 배출량을 평균 4% 줄이고 연간 30만 달러를 아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네덜란드는 한발 더 나아가 흡입 마취 대신 정맥마취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맥마취는 흡입 마취보다 배출량이 최대 98%까지 적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지난 10년간 마취용 온실가스 배출량이 30% 가까이 줄었다는 2025년 랜싯 플래니터리헬스 연구도 나왔습니다. 다만 같은 연구는 소득이 낮은 나라에서는 데스플루레인 사용이 오히려 늘고 있다고도 짚었습니다.
제조사는 생각이 다르다
데스플루레인을 만드는 백스터 인터내셔널은 이 약제의 기후 영향이 미미하다는 입장입니다. 자사가 인용한 두 연구를 근거로 지금 수준의 사용량으로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그중 한 연구의 저자는 백스터로부터 연구비를 받은 적이 있었고 회사 측은 그 지원이 소액이었으며 과거에 이뤄진 작업에 대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리즈대 기후과학자 파이어스 포스터는 생각이 다릅니다. 그는 "배출량을 줄이면 곧바로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확실히 해볼 만한 일"이라고 블룸버그 통신에 말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웃음가스는 낯선 이름이 아닙니다. 대한소아치과학회지에 실린 탁민경 외 연구진의 2021년 논문을 보면 국민건강보험공단 표본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진정법으로 치료받은 소아 환자 중 아산화질소·산소 흡입 진정을 쓴 비율이 2002년 45.9%에서 2015년 89.5%로 늘었습니다. 이런 진정 치료의 87.7%는 동네 치과의원에서 이뤄졌습니다. 다만 이 가스를 온실가스 배출원으로 다루는 논의는 국내에서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는 코로 뿌리는 비강 진정법이 소아치과에서 먹는 진정제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어 웃음가스의 쓰임새가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도 지켜볼 대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