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곧 빠질 것 같은 유치 하나에 충치가 깊게 생겼습니다. 아이가 그 치아로 씹을 때 조금 불편해하고 치과에서는 신경치료(치수치료)를 권했습니다. 몇 달 안에 자연히 빠질 치아인데 신경치료까지 꼭 해야 하는지, 차라리 미리 뽑는 것이 더 간단하지 않은지 궁금합니다.

짧은 답변

교환 시기가 가깝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신경치료 여부가 정해지지는 않습니다. 치과에서는 충치로 번진 염증이 치아 겉쪽(치관부) 신경에만 머물러 있는지, 뿌리 쪽(치근부) 신경이나 그 끝까지 번졌는지, 뿌리가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과정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치료 후에 씌울 수 있을 만큼 치아가 남아 있는지를 함께 살펴 신경치료와 발치 중 하나를 고릅니다. 염증이 가벼우면 신경을 살리는 치료로, 치관부 신경까지만 감염되었다면 그 부분만 제거하는 치료로, 뿌리 쪽까지 감염이 번지거나 치아가 심하게 손상되었다면 뿌리 쪽 신경까지 제거하는 치료나 발치로 방향이 갈립니다.

왜 그런가요?

염증이 어디까지 번졌는지가 먼저 갈립니다

유치 속에는 치아 겉면에 가까운 치관부 치수와 뿌리 쪽으로 이어지는 치근부 치수가 있습니다. 충치가 깊어져 이 신경(치수) 조직에 염증이 생겼을 때, 염증이 어디까지 번졌는지에 따라 치료 방법이 나뉩니다.

치아 속 염증이 치관부 신경에만 있는 경우와 뿌리 끝까지 번진 경우를 비교한 단면 그림
충치로 생긴 염증이 치아 속 신경 일부에만 머무는 경우와 뿌리 끝까지 번진 경우를 비교한 그림입니다. 그림. AI 이미지

염증이 가볍고 찬 것에만 일시적으로 반응하며 저절로 생기는 통증이 없다면, 신경을 그대로 살려 두는 치료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적절한 재료로 덮어 밀봉하면 신경의 생활력을 유지할 수 있고 이런 치료의 성공률은 90%를 넘는 것으로 보고됩니다.

염증이 심해져 치관부 신경까지 감염되었지만 뿌리 쪽 신경은 아직 건강하다면, 치관부 신경만 제거하고 뿌리 쪽 신경은 그대로 남기는 치료(치수절단술)를 선택합니다. 다만 신경이 이미 죽었거나 뿌리 끝에 염증 병소가 생긴 경우에는 이 치료로는 완전히 낫기 어려워 권장되지 않습니다. 이때는 치관부와 뿌리 쪽 신경을 모두 제거하는 치료(치수절제, 흔히 발수라고 부릅니다)나 발치 중에서 선택하게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통증이 사라졌다고 해서 염증이 나아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신경이 완전히 죽으면 오히려 자극을 느끼지 못해 통증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치과에서는 통증 유무 하나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방사선 사진과 신경 반응 검사 등 여러 소견을 함께 살펴봅니다.

치근흡수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도 함께 봅니다

유치는 그 아래서 자라는 영구치가 밀고 올라오면서 뿌리가 자연스럽게 녹아 짧아지는데, 이 과정을 치근흡수라고 합니다. 치근흡수가 끝나갈 즈음에 유치는 흔들리다가 빠집니다. 이 흡수가 진행되는 모습은 앞니와 어금니에서 다르게 나타나며, 뿌리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방사선 사진으로 확인합니다.

유치 뿌리가 거의 흡수되지 않은 모습과 많이 흡수되어 짧아진 모습을 비교한 단면 그림
유치 뿌리가 자연스럽게 흡수되기 전과 많이 흡수된 뒤의 모습을 비교한 그림입니다. 그림. AI 이미지

신경치료를 받은 유치는 반대쪽 치아보다 치근흡수가 더 빠르게 진행되어 일찍 빠지는 경우가 보고되어 있습니다. 신경치료로 치아를 살려 두어도 교환 시기가 조금 앞당겨질 수 있다는 뜻이며, 이는 자연스러운 경과로 받아들여집니다. 치과에서는 방사선 사진으로 남은 뿌리의 길이와 흡수 정도, 그 아래 영구치가 올라올 준비가 얼마나 되었는지를 함께 보고 신경치료와 발치 중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지 판단합니다. 발치를 하게 되더라도 그 아래 자라고 있는 영구치의 싹을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치료 후에 씌울 수 있을 만큼 치아가 남아 있는지도 영향을 줍니다

치관부나 뿌리 쪽 신경을 제거하는 치료를 마친 유치는 신경이 있던 자리를 재료로 채운 뒤 보통 기성금속관이라는 금속 크라운으로 덮어 마무리합니다. 신경치료 자체가 가능하더라도, 충치로 치아 벽이 많이 무너져 크라운을 씌울 만큼 구조가 남아 있지 않다면 치료를 이어갈 이유가 줄어듭니다. 유치의 크라운 수복에 대해서는 유치도 신경치료 후 크라운을 씌워야 하나요?에서 더 자세히 다뤘습니다.

교환 시기가 가깝다고 그냥 두면 안 되는 이유

어차피 몇 달 안에 빠질 치아라고 해서 깊은 충치를 방치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이미 어차피 빠질 유치의 충치도 치료해야 하나요?에서 다뤘습니다. 여기에 보탤 점은, 유치 뿌리 끝까지 번진 감염이 그 아래서 자라는 영구치의 싹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유치의 치근단 감염으로 영구치의 법랑질(치아 겉면의 단단한 막)이 자라는 세포가 손상되면, 나중에 그 영구치가 올라올 때 표면에 변색이나 결손이 남을 수 있습니다.

또 감염이 더 번지면 자발통과 함께 잇몸이나 볼이 붓는 등 급성 감염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증상이 보이면 교환 시기와 상관없이 바로 치과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치료 후 붓기가 나타나는 경우에 대해서는 아이 치아 치료 후 볼과 눈 주변까지 붓는다면 기다려도 되나요?에서 다뤘습니다.